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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중전화기

공중전화기 (18.10.12)

오늘은 퇴근을 하고 바로 고향에 가는 날이다. 1년에 한번 씩 꼭 가야했었다. 하지만 나는 3년에 한번 정도 갔다. 지하철을 타고 가는 길은 무척이나 쉬웠다. 항상 걸어 다니는 길이라서 그런지 눈을 감고 갈수 있을 것 같았다.

띠리링

주머니에서 벨소리가 울렸다.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폰이 없었다. 걸음을 멈추고 가방을 뒤적거렸다. 가방에도 없었다. 바닥에 떨궜다 싶어 뒤를 돌아 바닥만 보고 걸었다.

띠리링

전화 벨소리가 가까이 들렸다. 고개를 들어 앞을 보자 내 앞에 공중전화가 보였다. 공중전화에서 전화가 오는 것이었다. 나는 난감했다. 공중전화를 태어나서 만져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고민할 사이 울림이 끊겼다. 나는 이때다 싶어서 뒤를 돌았다. 그때 그순간 내 몸은 다시 앞으로 돌려졌다. 피곤해서 몸이 이상하다고 느꼈다. 다시 뒤를 돌아보지만 내 몸은 마치 전화를 할까 말까 하는 미친놈 같았다. 몇 번을 반복했을까, 내 옆으로 하얗고 가느다란 손이 다가왔다. 손을 잡고 싶어서 잡은 건 아니지만 손을 잡아버렸다.

“아, 죄송한데 오십원 쓰고 금방 드릴게요!”

그녀는 눈웃음을 하며 전화기 밑 동전 구멍함에서 오십원을 가져갔다. 그리고 옆 공중전화에 돈을 넣고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이 시대에 공중전화를 사용하는 사람이 있었다. 참으로 신기한 여자였다.

“총각! 전화 다했으면 나와!”

내 뒤로 목소리가 들려 뒤를 돌았다. 이게 뭔 상황인가? 내 뒤로 사람들이 줄서있었다. 난 다시 앞뒤를 돌며 아까 했던 행동을 했다. 아무런 느낌이 없었다.

“뭐 하는 거여! 쯧쯧 비켜!”

할머니 말에 변명도 못하고 이리저리 치이며 나왔다. 주위를 둘러봤을 땐 아무런 변화는 없는 것 같은데, 마치 다른 시공간에 온 기분이었다. 멍하니 생각에 잠겨있는데, 누군가 내 어깨를 톡톡 두드렸다. 아까 그 여자였다. 그녀는 싱글생글 웃으며 말했다.

“고마워요, 오십원.”

나에게 건낸 오십원은 그림이 달랐다.

“저기 근처에 병원이 있을까요?”

“아, 저 따라오면 되요.”

오늘 처음 본 여자에게 믿음이 안가 가만히 그녀를 보는데 그녀가 다시 말했다.

“근처 병원에서 일하고 있어요.”

그녀의 웃음은 나를 편안하게 만들었다.

그녀는 간호사복으로 갈아입고 대기하는 동안 심심하지 않게 기다려줬다.

“안 바쁘세요?”

“괜찮아요.”

그녀는 수줍게 웃더니 나에게 질문했다.

“실례지만, 무슨 일 하세요?”

“스마트폰 개발을 하고 있어요.”

“스마토 폰이요?”

그녀는 이내 박수를 치며 전문직인 것 같다며 멋있다고 말했다. 그녀는 사람을 기분 좋게 만들었다.

“공중전화 어떻게 생각하세요?”

대뜸 물어보는 그녀의 말이었다. 그러다 그녀는 자신이 대답했다.

“전 불편하면서도 편해서요. 이상하죠?”

나는 그저 그녀의 말을 듣기만 했다.

“나중에 더 좋은 도구가 나오면 슬플 것 같아요. 안 그래요?”

그녀는 보기와 다르게 생각이 깊었다.

“아마 더 좋아지는 그런 날이 올 거예요.”

희망적인 말을 그녀에게 말했다. 그러나 그녀는 반대였다.

“그런 날이 싫어요.”

그녀의 말에 왜라고 물었다. 그러자 여자는 말했다.

“기억 속에서 잊혀가는 것이 슬퍼요. 공중전화는 아직 그대로 그 자리에 남아있는데 말이죠.”

“순자씨! 빨리 와요!”

그녀는 긴급호출에 짧은 인사를 하고 뛰어갔다. 혼자 남겨진 이 공간에 막막했다. 눈을 감았다.

띠리링

눈이 번쩍 떠졌다. 그 자리에서 일어나 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몸을 옮겼다. 병원 복도 끝에 공중전화가 보였다. 앞으로 다가가자 전화가 끊어졌다. 나는 아까 여자가 했던 것처럼 동전을 넣고 버튼을 눌렀다. 그러자 통화음이 들렸다. 그리고 몸은 아까 앉아있던 그 자리로 돌아가는 느낌을 받았다.

다시 현재로 돌아오고 나서 난 그저 몸이 피곤해서 잠시 꿈을 꿨다고 생각했다. 나쁜 꿈은 아닌 것 같았다.

도착한 고향 집은 언제와도 항상 편안했다. 거실에는 제사상이 차려져있었다. 부엌에 계신 아버지가 나와 나를 반갑게 맞이해줬다. 과일 준비가 끝나고 아버지는 사진을 골라 달라며 나에게 보여줬다.

“네 엄마 젊었을 적인데, 이걸로 사진 어떠니?”

나는 아무 말도 못했다. 아까 내가 본 그녀였다. 내 어릴 적 기억 속에 있던 엄마의 얼굴, 아까 기억 속의 엄마의 얼굴이 겹쳤다. 사진 속 그녀는 내 기억 속 그녀와 똑같이 환하게 웃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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